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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차 & 한방차

[스크랩] 다도 - 추사(秋史)와 초의(草衣)의 차(茶)생활 서신 공개

 

 

 

추사(秋史)와 초의(草衣)의 차(茶)생활 서신 공개

 

 

 

 
조선조말기 차 문화의 중흥을 도모하며 차생활의 기본서인 다신전(茶神傳)을 저술한 초의(草衣)선사와

 

서예대가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은 돈독한 우정 속에 많은 간찰(장지에 쓴 편지)을 주고받았다.

다음은 추사가 1830∼1856년 초의선사 등 친지들에게 보낸 수 백 통의 편지 중 차에 관한 내용을 추려본 것이다. 추사의 서예작품 및 간찰 등 2700여종, 1만 여점의 방대한 자료는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교수였던 후지츠카치카시(1879~1948) 박사가 소장해 오고 있다가 2006년초 일본에서 유족을 통해 과천시에 기증되었다.

차에 관한 간찰도 그 안에 있던 것인데 그 자료는 모두 공개되지 못하고 해마다 부분적으로 과천문화원이 번역 출간해 오고 있다. 금석문학, 고증학자, 문인화가로 시·서 및 산문에서 일대를 풍미했던 추사의 작품은 일찍이 중국 청조의 지식층을 비롯한 동양 3국에서 수집붐이 일어 한류를 일으킨 원조라 할 수 있다.

초의선사는 45세때(1830년) 일지암에서 우리나라 차생활의 기본이며 입문서가 되는 다신전을 저술하여 쇠퇴해가는 조선의 차문화에 활력을 불어 넣은 인물이다.

△다음은 추사가 향훈(香薰)스님에게 보낸 편지중

  

‘바다 건너 인편으로 차를 보내 주신 것은 저의 한량없는 복덕이자 저를 다삼매(茶三昧), 화장법계(華藏法界)에 뛰어들게 하신 것입니다. 차 향기를 맞게 되면 늙은 부처도 얼굴을 펼 것이고 그때는 초의 선사도 인장(吝障)을 녹이고 인업(忍業)을 깨뜨려 납자(衲子·중)의 남는 향기를 애걸하여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새 책력을 보내드립니다. 나머지 글씨는 다시 써 보내드리겠습니다.’

몇 마디 안되는 글 속에서도 주인공들이 차와 선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차 향기에 부처님도 얼굴을 펴고” …“노선사가 향기를 애걸한다” 등은 차삼매경으로 선정(禪定)에 빠진 고수들의 표현일 것이다.

△1836년 2월 5일 초의대사(大士)께

서문 ‘선탑(禪榻)과 다연(茶煙)이 전해오지 않은지도 벌써 한해가 지났습니다’

선탑은 참선할 때 앉는 의자로 여기서는 편지라는 뜻이며 다연은 차를 다릴 때 나는 연기.

‘대사의 가고 오는 세월 속에서 능히 가고 오지 않는 것(불변의 진리)을 갖고 계십니까?’터득한 진리를 갖고 계십니까 하는 물음으로 선사의 생활에 정곡을 찌른 재치 있는 질문이다.

추사와 초의는 한살 차이의 자치 동갑내기인데 대사에 ‘師’대신 ‘士’를 쓴 것은 불교의 수행계급인 법계(法界)에 따라 최고승이라 부르기보다 ‘士 ’는 믿음이 두터운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쓰기가 편했을 것이다.

△초의 선사께(제 7신)

…‘미천한 몸 목석과 다름없이 지낼 뿐입니다. 차는 정말 훌륭합니다. 차의 삼매를 꿰뚫은 것입니까’

추사가 초의에게 받은 차에 대해 감탄한 말, 추사의 편지는 초의선사가 간찰첩으로 만들어 후세에 남긴 것이다. 이분들은 계절에 따라 차, 버섯, 누룩, 주향(炷香), 안경, 등잔, 책력, 서예작품, 그림, 수석 등을 선물로 주고받았음을 알 수 있다.

△제 14신, 초의에게 보낸 간찰중

‘특별히 보내신 차는 심폐를 아주 개운하게 해줍니다. 매번 볶는 법이 지나쳐 정기(精氣)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 다시 들 때는 불조절을 잘 하는 게 어떻습니까?……허치(許痴)의 그림 솜씨는 놀랍습니다. 왜 데리고 오지 않습니까……서울에 와서 지내게 되면 놀라운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금강산 암자에 초의선사가 허치와 같이 있을 때 보낸 편지인데 차 잎을 볶을 때 불조절을 말한 것으로 어떻게 보면 얻어 먹는자가 말이 많다고 하겠으나 추사와 초의는 겪의 없이 얘기할 수 있는 사이인 것을 알 수 있다. 또 추사가 허치를 가까이에 두고 싶을 정도로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

△추사가 중추부사 우선(藕船)에게 보낸 편지중

‘먹고 있던 차가 다 떨어져 빌릴 곳이 없고 또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묵은 상자에 남아 있지 않을테고……있든 없든 서로 도움을 주는 일은 또한 혹자의 부득이함일 것입니다. 그래서 무릅쓰고 부탁드리고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병완(病阮)’ 추사가 70세 말년에 과천생활중 병석에 있으면서 차를 구걸한 것인데 우선은 바로 차를 보내 주었다. 편지에는 차가 바닥난 얘기를 하면서 논어고사에서 미생고가 집에 식초가 없는데도 이웃집에서 빌려다가 남에게 준 것을 공자가 오히려 나무란 일’을 은유적으로 적었다.

우선 이상적은 추사가 59세인 1844년 제주도 귀양중에 명품인 세한도를 받은 제자이다. 그후 세한도는 후지츠카씨가 소장하고 있다가 1940년경 손재형씨에게 양도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초의선사,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은 그 시대 쇠퇴해가는 우리나라 차 문화를 일으켜 보려고 뜻을 같이한 3대가였다. 주사의 간찰에서 그 밖의 차에 대한 자료는 찾기 어렵다. 앞으로 공개될 나머지 추사자료에 기대를 걸어본다.

(참고문헌자료 : 완당전집, 추사의 작은 글씨, 추사 글씨 귀향전 도록, 추사와 한중교류·2007년 과천문화원 발행)

<한영달 고전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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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秋史)와 초의(草衣)의 차(茶)생활 서신 공개“차 향기에 부처님도 얼굴 펴고…

노선사도 향기를 애걸한다”
차삼매(茶三昧)와 선정(禪定)에 빠진 고수들

 

                                                  

 
출처 : 건강의 터전 내일의 향기
글쓴이 : 정아(靜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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